영화초등학교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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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초등학교는 1892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죤스 부인이 설립한 영화학당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초등학교이다. 인천 내리교회에서 여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을 시작했으며, 1912년 사립 영화학교로 인가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에 힘썼으며, 광복 이후 여러 차례 교명 변경을 거쳐 1996년 현재의 영화초등학교가 되었다. 2000년대 초 폐교 위기를 겪었으나 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극복하고, 영어 이머젼 교육 실시 및 홀리스카웃 창설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11년에 완공된 본관동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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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초등학교 (인천)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교훈 | 예수님의 성품과 지혜를 닮아가는 어린이 |
개교 | 1892년 4월 |
설립 형태 | 사립 |
위치 | 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 39 |
상징 | 교화: 개나리, 교목: 은행나무 |
관할 관청 | 인천광역시남부교육지원청 |
웹사이트 | 영화초등학교 웹사이트 |
2. 역사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초등학교는 1892년에 설립된 사립학교 '''영화학당'''의 후신이다. 이화학당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던 마거릿 벤젤(존스 부인)이 인천에 정착하여 여자 어린이 교육을 시작하면서 영화학당이 시작되었다. 영화학당은 내리교회 안에 설립되어 교육에서 소외된 여자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출발하였다. 학교 이름은 영생과 교화를 뜻하며 기독교 이념을 상징한다. 초기에는 학생 수가 거의 늘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인천의 명문 학교로 발전하였다. 서울의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중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한데 반하여 영화초등학교는 초등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학교를 졸업한 여자 어린이들은 선교사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기도 했다.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가 모두 영화학당 출신이다.
연혁은 다음과 같다.
날짜 | 내용 |
---|---|
1892년 4월 | 미국 선교사 존스 부인, 영화학당 설립 |
1912년 8월 | 사립 영화학교 인가 |
1922년 9월 | 영화여자 보통학교로 인가 |
1938년 4월 | 영화여자 심상 소학교로 인가 |
1941년 4월 | 영화여자국민학교로 인가 |
1964년 7월 | 학교법인 영화학원 설립 |
1966년 3월 | 샛별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
1973년 10월 | 영화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
1996년 3월 | 영화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
1997년 3월 | 교육부지정 인성교육 자율시범학교 지정 (~ 1998년 2월) |
2000년 10월 | 교사 신축공사 |
2001년 9월 | 신축 교사 이전 |
2007년 8월 | 어학실 개축 |
2007년 10월 | 교내 영어 마을 준공 |
2007년 11월 | 교내 영어마을 준공, 휴게실 준공, 교복(하ㆍ동복) 및 체육복 교체 |
2008년 2월 | 반 전자칠판 설치(7개반) |
2008년 3월 1일 | 영어 이머젼 교육 실시 |
2008년 8월 | 과학실 현대화, 냉난방 설비 공사(교실, 복도 전층) |
2008년 12월 | CCTV 설치(11대) |
2009년 2월 | 전자칠판 추가 설치(2개반), 어학실 증설(3개실), 실외 골프장 설치, 컴퓨터실 리모델링 및 최신형 컴퓨터 설치 |
2009년 4월 23일 | 우리나라 최초 홀리스카웃 창설 |
2009년 8월 | 교실증축(3실), 전자칠판 설치(3개반), 다목적실 확장, 보육교실 설치, 방송실 현대화, 책걸상 및 사물함 전면 교체 |
2010년 9월 | 도서관 리모델링 |
2011년 8월 | 화장실 리모델링 |
2011년 9월 1일 | 제18대 안태홍 교장 선생님 취임 |
2011년 10월 6일 | 학교 운동장 준공식 |
2. 1. 설립 초기 (1892년 ~ 1910년대)
1892년 4월, 미국 감리교 선교사 존스 부인이 인천 내리교회에서 영화학당을 설립하여 여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하였다.[1] '영화(永和)'라는 이름은 영생과 교화를 뜻하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였다.[1] 초기에는 선교사에 대한 반감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으나,[1] 점차 인천 지역 명문 사학으로 성장하여 이화학당으로 진학하는 여학생들을 배출하였다.[1]2. 2. 일제강점기 (1910년대 ~ 1945년)
1912년 8월, 사립 영화학교로 인가받았다. 1922년 9월에는 영화여자보통학교로, 1938년 4월에는 영화여자심상소학교로, 1941년 4월에는 영화여자국민학교로 인가받았다.[1] 일제강점기 동안 영화학교는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에 힘썼으며, 일장기 말소 사건의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과 영화배우 이재경 등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2. 3. 광복 이후 (1945년 ~ 현재)
1964년 7월, 학교법인 영화학원이 설립되었다.[1] 1966년 3월, 샛별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1] 1973년 10월, 영화국민학교로 교명을 다시 변경하였다.[1] 1996년 3월, 영화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1] 1997년 3월, 교육부 지정 인성교육 자율시범학교로 지정되어 1998년 2월까지 운영하였다.[1]2000년 초, 교사의 체벌 문제로 재단과 학부모 간 갈등이 발생하여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폐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1] 그러나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영화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 학교는 위기를 극복했다.[1]
2000년 이후, 학교는 교육 환경 개선에 힘썼다. 2000년 10월 교사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9월 신축 교사로 이전하였다.[1] 2007년 8월에는 어학실을 개축하고, 2007년 10월에는 교내 영어 마을을 준공하였다.[1] 2008년 3월 1일부터 영어 이머젼 교육을 실시하였다.[1] 2009년 4월 23일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홀리스카웃을 창설하였다.[1] 2011년 9월 1일에는 제18대 안태홍 교장이 취임하였고, 2011년 10월 6일에는 학교 운동장 준공식을 가졌다.[1]
3. 학교 시설
영화학교는 선교를 목적으로 신식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다. 현재 학교 교사는 1909년 우각현의 대지 1226평을 매입하고 연면적 212평의 3층 건물로 지어졌다. 1910년 3월 30일에 착공하여 1911년 9월 14일에 완공되었으며, 2001년 4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1]
3. 1. 본관동
1909년 우각현의 대지 1226평을 사들이고 연면적 212평의 3층 교사를 1910년 3월 30일에 착공하여 1911년 9월 14일에 완공하였다.[1] 2001년 4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1]3. 2. 기타 시설
영화초등학교는 어학실, 영어마을, 과학실, 골프장, 컴퓨터실, 도서관, 다목적실 등 현대화된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시설 | 내용 |
---|---|
어학실 | 2007년 8월 개축[1] |
영어마을 | 2007년 10월 교내 영어 마을 준공 |
과학실 | 2008년 8월 현대화 |
골프장 | 2009년 2월 실외 골프장 설치 |
컴퓨터실 | 2009년 2월 리모델링, 최신형 컴퓨터 설치 |
도서관 | 2010년 9월 리모델링 |
다목적실 | 2009년 8월 확장 |
4. 학교 동문
영화초등학교는 이화학당 제1세대이자 한국 여성계의 선구자인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를 배출했다.[1] 다만, 이들의 학적부는 학교에 남아있지 않다. 이 외에도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길용과 영화배우 이재경이 영화초등학교 출신이다.[1]
5. 평가 및 의의
1892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인 사립학교 '''영화학당'''의 후신으로, 대한민국 초기 근대 교육, 특히 여성 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화학당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던 마거릿 벤젤이 인천에 정착하여 여자 어린이 교육을 시작한 것이 영화학당의 시작이었다. 벤젤은 인천 내리교회 제2대 담임 존스 목사와 결혼하여 존스 부인으로 불렸다.[1]
영화학당은 내리교회 안에 설립되어 교육에서 배제되어온 여자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출발하여, 일제강점기 민족 교육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학교 이름은 영생과 교화를 뜻하여 기독교 이념을 상징한다. 초기에는 선교사에 대한 배타적인 의식으로 학생 수가 거의 늘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점차 인천의 명문 학교로 발전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서울의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중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한데 반하여 영화초등학교는 초등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1]
영화학당 졸업생들은 선교사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기도 했다. 이화학당 제1세대로 한국 여성계의 선구자인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가 모두 영화학당 출신이다. 그러나 영화초등학교에 이들의 학적부는 남아있지 않다. 그밖의 유명한 영화학당 졸업생으로는 일장기 말소 사건의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과 영화배우 이재경이 있다.[1]
이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인천 지역의 명문 사학으로, 2000년 초에는 교사의 체벌에 따른 재단과 학부모간 갈등으로 학생 수가 5분의 1 수준으로 격감하면서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때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영화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 회생하여, 지속적인 교육 혁신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교육 기관으로 발전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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